힐링마음산책 · 339회

사과의 심리학 그리고 우리 사회의 언어문화

2026.10.27 · 한성열 교수

“사과를 바라시니까 정말 마음을 다해서 사과드립니다.”

지난 10월 17일 추미애 경기도지사가 부천 공장 화재 현장에서 순직한 소방관의 빈소를 조문한 뒤 기자들에게 한 말이다. 추 지사는 며칠 전 국정감사에서 소방 예산 문제를 설명하면서 소방을 가리켜 “가장 골치 아픈 재정 빨대”라고 표현했다. 이에 소방관들이 반발하며 사과를 요구했다. 더욱이 그사이 화재 현장에서 소방관이 순직하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하면서 논란은 더욱 커졌다.

추 지사는 소방관을 폄훼하려는 의도는 없었다고 해명했다. 실제로 지방 재정의 구조적 문제를 지적하려는 취지였을 수 있다. 그러나 “사과를 바라시니까 사과드립니다”라는 표현은 오히려 논란을 키웠다. 분명히 사과한다는 말을 했는데 왜 듣는 사람들은 이를 진정한 사과로 받아들이기 어려웠을까?

필자는 2023년 7월에도 ‘진정한 사과는 상대방의 불편한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게재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사과를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는 것을 보면 우리 사회가 아직도 사과하는 방법에 서툰 것 같다. 돌이켜 보면 우리는 학교나 가정에서 잘못했으면 사과해야 한다고 배웠지만, 어떻게 사과해야 상대방의 상한 마음이 누그러지고 관계가 회복되는지는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그래서 다시 한번 진정한 사과의 의미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여기서 한 가지 분명히 밝히고 싶다.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과를 분석했고, 이번에 추미애 지사의 사과를 살펴보는 것은 특정 정치인을 비난하거나 폄하하려는 의도에서가 아니다. 필자의 관심은 정치적 입장이나 인물이 아니라 사과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심리적 현상에 있다. 다만 정치인의 발언은 언론에 자주 보도되고 널리 알려지기 때문에 이러한 현상을 설명하는 사례로 삼기에 적절하다.

사실 사과와 변명의 문제는 정치인에게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부부 사이에, 부모와 자녀 사이에, 직장에서 동료 사이에도 흔히 일어난다. 어쩌면 우리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같은 잘못을 반복하고 있는지 모른다.

2016년 11월 박근혜 전 대통령은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발표했다. 그는 자신의 처지가 얼마나 괴로운지를 설명하면서 대통령이 된 것에 자괴감까지 느낀다고 말했다. 물론 실제로 괴로웠을 수 있다. 그러나 사과에서 중요한 것은 대통령 자신이 얼마나 괴로운가보다 그 일로 인해 국민이 얼마나 큰 실망과 배신감, 분노를 느꼈는가 하는 점이었다. 그의 사과에는 자신의 괴로움이 강조된 반면 국민의 상처받은 마음에 대한 공감은 충분히 드러나지 않았다. 결국 사과를 하면서도 자신이 이야기의 중심이 된 것이다.

여기에 사과와 변명의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사과는 ‘너’의 아픔에 관심을 갖는 것이고, 변명은 ‘나’의 사정을 설명하는 것이다. 상담 현장에서도 이러한 차이를 이해하지 못해 갈등이 깊어지는 부부를 자주 만난다. 남편이 아내에게 잘못을 저지른 뒤 어렵게 사과한다.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다음부터 조심할게. 됐지?” 남편은 자존심을 내려놓고 잘못을 인정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아내는 오히려 화를 낸다. “뭐가 미안한데?” 남편은 당황한다. 분명히 사과했는데 왜 받아들이지 않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다 보면 “사과를 해도 소용없네”라며 남편까지 화를 내고 만다.

그러나 아내가 듣고 싶었던 것은 단순히 잘못했다는 말이 아니다. 남편의 행동 때문에 자신이 얼마나 외롭고 속상했으며 무시당했다고 느꼈는지를 남편이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내가 당신 말을 무시했을 때 얼마나 속상하고 외로웠겠어. 그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어. 정말 미안해.” 이렇게 말했다면 아내의 반응은 달라질 수 있다. 두 사과의 차이는 무엇인가? 첫 번째 사과에는 남편만 있고, 두 번째 사과에는 아내가 있다.

부모와 자녀 사이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 부모가 자녀에게 심한 말을 한 뒤 “아까 화낸 건 미안하다. 하지만 네가 그렇게 행동하니까 화가 날 수밖에 없었잖니”라고 말한다. 부모는 사과했다고 생각하지만 자녀는 오히려 마음의 문을 닫는다. 사과하면서도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아까 네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화를 내서 미안하다. 네 입장에서는 억울하고 속상했을 것 같아”라고 말한다면 어떨까? 자녀는 자신의 감정이 존중받고 있다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부모가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한다고 해서 권위가 무너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자녀는 부모의 모습을 통해 책임지는 태도를 배우게 된다.

그렇다면 효과적인 사과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 기본 형식은 “나의 어떤 행동이 너에게 어떤 불편함이나 고통을 주었기 때문에 미안하다”이다. 여기에는 세 가지 요소가 있다. 첫째, 자신의 잘못된 행동을 구체적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둘째, 그 행동 때문에 상대방이 경험한 감정과 고통을 이해하는 것이다. 셋째, 그러한 고통을 주었다는 사실에 대해 미안한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다.

이 가운데 특히 중요한 것은 두 번째, 즉 상대방의 감정에 대한 공감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내가 잘못했어. 미안해”라고 말하면서도 정작 상대방이 얼마나 아팠는지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래서 사과받는 사람은 자신의 상처가 제대로 이해받지 못했다고 느낀다. 이것이 사과했는데도 오히려 상대방이 더 화를 내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다.

추 지사의 발언도 이러한 관점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과를 바라시니까 사과드립니다”라는 표현에서는 상대방이 입은 상처보다 상대방이 사과를 요구했다는 사실이 앞에 놓여 있다. 이러한 말을 들으면 소방관들은 “자신이 잘못했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요구하니까 마지못해 사과하는 것인가?”라고 느낄 수 있다.

물론 이 말만으로 추 지사의 실제 속마음이나 사과의 진정성을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사과에서는 말하는 사람의 의도보다 듣는 사람이 그 말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도 중요하다. 특히 소방관들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위험한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업무가 지방 재정의 부담인 ‘빨대’처럼 표현되었을 때, 자신들의 헌신과 직업적 자부심이 존중받지 못했다고 느꼈을 수 있다.

이럴 때 자신의 의도를 해명하기에 앞서 “그런 표현으로 인해 여러분이 얼마나 모욕감과 허탈감을 느끼셨겠습니까? 여러분의 헌신과 자부심에 상처를 드려 정말 죄송합니다”라고 말했다면, 그 사과를 듣는 소방관들의 마음이 훨씬 풀어지지 않았을까?

우리가 정치인을 비롯한 사회 지도자들의 언어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그들의 말이 사회 전체의 언어 습관과 인간관계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사람은 학교에서 가르치는 내용만 배우는 것이 아니다. 일상생활에서 다른 사람의 말과 행동을 관찰하면서 무엇이 바람직하고 무엇이 허용되는지를 배운다. 심리학자 앨버트 반두라(Albert Bandura)는 이를 관찰학습(observational learning)이라고 설명했다. 흔히 말하는 모방학습도 이러한 과정에 포함된다.

가정에서 부모는 자녀에게 가장 가까운 관찰학습의 대상이다. 부모가 서로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변명하거나 책임을 떠넘기는 모습을 반복해서 보여주면 자녀도 그러한 대화 방식을 배우기 쉽다. 반대로 부모가 자신의 잘못을 솔직히 인정하고 상대방의 아픔에 공감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자녀는 자연스럽게 사과하고 화해하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사회도 마찬가지다. 정치인을 비롯한 사회 저명인사들의 말과 행동은 언론과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많은 사람에게 전달된다. 이들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보다 변명하는 모습을 반복해서 보여주면 그러한 태도가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것처럼 여겨질 위험이 있다. 반대로 자신의 잘못을 분명하게 인정하고 상대방의 아픔에 공감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그것 역시 사회에 중요한 학습 기회가 된다. 그러므로 사회 지도자들의 언어에는 특별한 책임이 따른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그들의 말은 사회의 언어 관습을 형성하고, 나아가 우리 사회의 정서적 성숙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사과는 자신의 미안한 마음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행위가 아니다. 자신의 행동으로 상처받은 사람이 그 아픔을 이해받았다고 느끼게 하는 관계적 경험이다. 이러한 경험이 쌓일 때 상한 마음이 누그러지고 관계가 회복될 가능성도 커진다.

성숙한 사람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잘못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이해하고 책임질 줄 아는 사람이다. 성숙한 사회도 마찬가지다. 지도자들이 실수하지 않는 사회가 아니라 잘못을 인정하고 진정으로 사과하며 그 책임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회다.

진정한 사과는 ‘나’의 입장을 설명하는 데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너’의 아픔을 이해하는 데서 시작한다. 그러한 이해와 공감의 언어가 가정과 사회에 쌓여갈 때 우리는 조금 더 성숙한 인간관계와 사회를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은 2026년 10월 27일 글로벌이코노믹 「힐링마음산책」(339회)에 실린 한성열 교수(고려대 심리학과 명예교수)의 칼럼입니다. 원문 보기